내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디냐.
1903년(계묘) 겨울 어느 날 보경 등의 종도들이 모시고 앉아 있는 자리에서 혼자 말씀으로
『내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디냐.』하시니라.
보경이 여쭈기를 『무엇이 그리 더디나이까?』하니
『내 이제 신명을 시켜 진인(眞人)을 찾아보니 아직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은 지라.
내 일과 때가 이렇듯 더디니 어찌 딱하지 않으리요.』 하시니라.
보경이 다시 그러하오면 『저희들은 모두 쓸모없는 사람이요, 또한 지금까지 헛되이 따름이오니까?』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체유기체 용유기용(體有其體 用有其用, 체에는 그 체가 있고, 용에는 그 용이 있음)이며,
시유기시 인유기인(時有其時 人有其人, 때에는 그 때가 있고 사람에는 그 사람이 있음) 이니라.』 하시니라.(태극진경3장59절)
내 덕을 펼 사람은 지금 초립동년(草笠童年)이니라
하루는 대흥리에 계시더니, 제자가 명을 받고 삿갓을 사와서 비치하니라.
말씀하시기를, 내 덕을 펼 사람은 지금 초립동년(草笠童年)이니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비록 나이가 적은 사람이라도
지위가 너보다 높고, 덕이 너보다 높거든 만날 적에 반드시 공경하라.
어떤 날은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때가 와서 한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내가 있는 곳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노라.(이중성 천지개벽경7편8장)
* 1907년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살려보자.
- 선도교 고수부 : 본명은 고판례로 1907년 당시 28세
- 천지개벽경 저자 이중성은 1907년 당시 11세
- 대순전경 저자 이상호 선생은 1888년 생으로 1907년 당시 20세
- 증산도 안운산(본명-안세찬)은 1922년생으로 1907년엔 태어나지도 못했다.
위의 인물들 중에서 강증산으로 부터 종통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고수부와 조정산이다.
그러나 고수부는 여자로써 초립동이 아니였고,
조정산께서 증산상제 님으로 부터 종통을 받아 덕을 펼칠 그 초립동이 맞다고 볼 수 있다.
* 초립동(草笠童)은 초립(草笠)을 쓴 사내아이로 1907년 당시 도주님은 13세 이셨다.
상제께서 조정산 도주님께 종통을 계승하다
도주 옥황상제님께서는 15세 되시던 1909년 4월 28일에 전 가족과 함께 창원역에서 신의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길에 오르셨다.
바로 이날 상제님께서 김보경(金甫京, 1861~1934)과 이치복(李致福, 1860∼1944)을 비롯한 몇몇 종도를 앞세우시고 대전역 근처의 철도주변에 이르셔서 혼자 말씀으로 「올 때가 되었는데.......」 하시고 멀리 바라보시며 누구를 기다리는 표정이시니라.
종도들이 이상이 여겨 여쭈기를 『누구를 그렇게 기다리시옵니까?』 하였으나 답을 않으시고 바라만 보시더니 마침 남쪽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보시고 반겨 하시며
『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 남자가 15세면 호패를 차느니 무슨 일을 못하리요.
과연 인유기인(人有其人) 시유기시(時有其時)로다.』 하시고 한참동안 서 계시니라.(태극진경9장153절)
* 증산께서 기유년(己酉年) 화천하시기 2개월 전 대전역 부근의 일이다.
기유년(己酉年)에 십오세이면, 을미생(乙未生)임을 뜻하는 내용이다.
바로 이 기차에는 일가와 함께 망명길에 오른 도주님께서 타고 계셨다.
그 사연을 살펴보면, 도주님의 조부께서는 홍문관 정자(正字)겸 춘추관 기사관(記事官), 승정원 주서(注書) 등을 지낸 조영규(趙瑩奎)셨다. 그 분은 일제가 조선을 침략할 뜻을 품은 것을 알고 나라의 위태함을 거듭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낙향하셨다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분개하여 토혈 서거하셨다.
조부의 배일사상(排日思想)을 이어받은 도주님의 부친과 숙부들은 구국운동을 하기 위해 화약 공장을 차리고 무기 수집을 하였는데 그만 일본 경찰에 발각되고 말았다.
형세가 다급해지자 도주님을 비롯한 전 가족은 고향을 떠나 만주로 피신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1909년 4월 28일 당시 15세이셨던 도주님께서는 창원역에서 신의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전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오르게 되신 것인데, 바로 그날 그 기차가 대전의 신탄진을 지날 때에 상제님께서 미리 마중 나와 계시다가 보시고 기뻐하셨던 것이다.
도주님께서 천명(天命)을 받드는 50년 공부를 시작하시게 됨은 바로 이때부터이다.
이 일화는 종도들 사이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상제님의 뒤를 이어 종통을 세우실 분이 도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유력한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훗날 이상호와 이정립이 상제님의 행적을 모아 『증산천사공사기』와 『대순전경』을 간행할 때 이 이야기를 싣지 않았는데, 그것은 종통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려주는 이 일화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도들에게는 이 불편한 진실이 워낙 광범히 하게 퍼져 있었다. 만약 당시 인물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종통을 주셨다면 그것도 편파적이라고 하여 종도들 간에 큰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통은 판밖에서 맥을 이루신 것이며, 종도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종교를 만들어 교주로 활동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증산관련 다른 교단들은 종교는 있으나 맥은 떨어져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증산도는 위 구절을 가지고 창시자인 안운산의 고향이 대전이라는 것을 꿰맞춰보려 했으나, 그 어떤 해석으로도 관련성을 찾을 수 없기에 증산도 경전인 도전의 신판을 발행하면서 부터는 이 구절을 빼 버렸다.
그러므로 지금 증산도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구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증산도 옛 경전 안에 있는 도주님 종통 내용



증산도 경전 도전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증산도 도전2쇄 증산도 도전편찬위원회 1996)
다만 이 부분이 걸렸는지 『증산도 도전』 3쇄를 간행하면서 이 부분을 삭제하였다.
사진주(四眞主) https://cafe.daum.net/gncjsroq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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